전력망과 V2G — 전기차가 발전소가 되는 날, 그 값은 누가 가져가나

전기차 한 대의 배터리는 대략 60킬로와트시(kWh)다. 4인 가구가 일주일 가까이 쓸 전기다. 그런 배터리가 지금 국내 도로 위에 109만 5,218대 굴러다니고, 그중 대부분은 하루의 절반 이상을 주차장에 서 있다. 이 사실에서 하나의 상상이 자라났다. 주차된 전기차를 전력망에 연결해 두면, 그것이 곧 발전소가 되지 않겠는가.

이 상상에는 이름이 있다. V2G(Vehicle-to-Grid), 전기차에서 전력망으로 전기를 되보내는 기술이다. 2026년 들어 국내에서도 실증이 시작됐고, 언론에는 “전기차 10만 대면 원전 1기”라는 문장이 돌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글의 질문은 조금 다르다. 주차된 전기차의 배터리가 전력시장에 들어갈 때 어떤 값이 매겨지는가, 그리고 그 값을 누가 가져가는가. 기술이 되느냐가 아니라 돈이 어디로 흐르느냐를 묻는 순간, V2G를 둘러싼 풍경은 상당히 달라진다.

핵심 요약

  • “V2G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국내 통설은 부정확하다. 전기사업법은 이미 전기차를 소규모전력자원으로 명시하고 있다. 비어 있는 것은 법률이 아니라 그 아래 세 층 — 통합발전소 자원 목록, 한전 기본공급약관, 전력시장운영규칙이다.
  • “전기차 10만 대 = 원전 1기”는 출력(kW) 기준으로만 성립한다. 에너지(kWh)로 환산하면 원전 1기가 하루에 내는 전기의 9.9% 수준이다.
  • 전기차는 생각만큼 꽂혀 있지 않다. 영국 실측 기준 충전기 접속 시간 비율은 평균 28%, 최저 6%다. “전기차는 95% 시간 주차돼 있다”는 말과는 다른 숫자다.
  • 한국의 가격 신호는 얇다. 여름 피크-경부하 차이는 kWh당 111.2원이지만, 연중 6개월인 봄·가을에는 14.7원에 그친다. 주택용에는 시간대별 요금제 자체가 없다.
  • 학계는 아직 합의하지 못했다. 배터리 열화, 단방향 스마트충전 대비 효용, 왕복효율 — 세 쟁점 모두 정면으로 갈리는 연구가 공존한다.
  • 돈의 행방은 공개돼 있지 않다. 애그리게이터가 수익의 40~50%를 가져간다는 미국 추정 외에, 충전사업자와 계통운영자의 몫을 수치로 밝힌 자료는 찾을 수 없었다.

1. 왜 하필 지금인가 — 하루 안에서 벌어지는 일

V2G가 갑자기 화제가 된 데는 이유가 있다. 한국 전력망이 최근 몇 년 사이 겪은 변화가 그것이다.

2026년 8월 7일, 국내 전력수요는 그해 최고인 95.3기가와트(GW)를 기록했다. 그날 오후 12시 55분, 재생에너지는 약 28.2GW를 발전하고 있었다. 전체 발전량의 28%에 해당하는 양이고, 그중 26.6GW가 태양광이었다. 그리고 저녁 7시, 같은 재생에너지 출력은 3.4GW로 떨어졌다. 6시간 만에 88% 감소, 태양광만 놓고 보면 94.7% 감소다.

문제는 전력수요가 정확히 그 시각에 정점을 찍는다는 데 있다. 태양이 지는 시간과 사람들이 집에 돌아와 에어컨을 켜는 시간이 겹친다. 전력업계가 ‘덕 커브(duck curve)’라 부르는 현상이다.

덕 커브(Duck Curve) — 태양광 발전이 늘어난 계통에서 하루 중 순부하(전체 수요에서 재생에너지 발전을 뺀 값)를 그리면 낮에 움푹 파이고 저녁에 급격히 치솟는 곡선이 나온다. 그 모양이 오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저녁의 가파른 상승 구간을 메우려면 순간적으로 큰 출력을 낼 수 있는 발전 자원이 필요하다.

정부도 이 변화를 인정했다. 2026년 4월 16일, 49년 만에 산업용 전기요금의 시간대 구분이 바뀌었다. 낮 11~15시는 ‘최대부하’에서 ‘중간부하’로 내려갔고, 저녁 18~21시가 새로 ‘최대부하’가 됐다. 태양광이 넘치는 낮에는 전기가 싸고, 태양광이 사라지는 저녁에는 비싸다는 현실을 요금표에 반영한 것이다(정책브리핑).

2026년 8월 한국 전력시장 실측 — 시간대별 SMP 곡선과 재생에너지 출력의 6시간 급감
하루 안에서 벌어지는 일 — 전력 가격의 진짜 변동은 계절이 아니라 하루 안에 있다 (클릭 시 확대)

출력제어의 무게중심이 제주에서 육지로 넘어갔다

또 하나의 변화가 있다. 발전한 재생에너지를 강제로 멈춰 세우는 ‘출력제어’다.

그동안 출력제어는 제주만의 문제로 여겨졌다. 전력거래소(KPX)의 2024년 제주 전력계통 운영실적을 보면, 제주 풍력 출력제어는 2023년 117회·2만 6,201메가와트시(MWh)로 정점을 찍은 뒤 2024년 51회·9,370MWh로 크게 줄었다. 재생에너지 입찰제도 도입과 날씨 요인이 겹친 결과다.

그런데 육지가 그 자리를 넘겨받았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2025년 전국 출력제어량은 16만 9,812MWh였는데, 2026년은 1~5월 다섯 달 만에 16만 1,805MWh에 도달했다. 전년 연간 실적의 95.3%다. 그중 51.3%인 83기가와트시(GWh)가 호남권에서 발생했다.

계통에 붙지 못하고 대기 중인 재생에너지 설비도 2026년 5월 기준 전국 8.7GW, 그중 호남이 3.7GW다. 버려지는 전기와 붙지 못하는 발전소가 동시에 쌓이고 있다는 뜻이다. 낮에 남는 전기를 저녁까지 옮길 수단이 있다면 두 문제가 동시에 완화된다. V2G가 지금 주목받는 배경이 여기 있다.

다만, 여기서 분모를 조심해야 한다

출력제어 ‘비율’은 무엇을 분모로 삼느냐에 따라 다섯 배까지 벌어진다. 제주의 2024년 풍력 제어량 9,370MWh는 제주 재생에너지 발전량(약 130만MWh) 대비 0.72%지만, 제주 총 발전량(약 6.57TWh) 대비로는 0.14%다. 전국 태양광 발전량을 분모로 잡으면 또 다른 숫자가 나온다.

또한 KPX의 제주 통계는 풍력만 MWh로 집계하고 태양광은 횟수만 기록한다. “제주 총 출력제어량”이라는 값은 이 표에서 계산할 수 없다. 이 글에서는 절대량과 그 추세만 사용한다.

2. V2G는 무엇이고, 무엇이 아닌가

국내 기사에서 가장 자주 어긋나는 지점부터 정리하자. 양방향 충전에는 서로 다른 층위가 있다.

구분 무엇에 연결되나 전력망 역송 대표 출력
V1G (스마트충전) 충전만 하되 시점·출력을 제어 없음 3.3~22kW
V2L 차량 콘센트에 가전을 직접 연결 없음 1.5~3.6kW
V2H 주택 분전반 (전환스위치 경유) 없음 7.6~19.2kW
V2G 전력망 — 계통연계 인증과 정산 계약 필요 있음 7~20kW

구분선은 단순하다. V2L은 콘센트에 꽂고, V2H는 분전반에 붙고, V2G는 계통에 판다. 뒤로 갈수록 필요한 인증과 제도가 늘어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 현대 아이오닉 5의 공식 자료에 명시된 V2L 출력은 최대 3.6kW다. 아이오닉 6, 기아 EV6, 니로 EV, 제네시스 GV60 등 E-GMP 계열 차종도 같은 사양이다. 그런데 영국의 V2G 호환 차종 정리에 따르면 이들 차종은 주택 분전반 연계(V2H)나 계통 역송(V2G) 기능을 갖고 있지 않다. V2L은 차 안에 있는 작은 인버터로 콘센트를 만드는 기능이지, 전력망에 전기를 파는 기능이 아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26년 5월 보고서전 세계에서 V2G가 가능한 전기차 모델이 22종, 전체 EV 모델의 1.5% 미만이라고 집계했다. V2H와 V2L까지 포함해도 4.5% 수준이다. 도로 위에 배터리는 많지만, 그 배터리를 전력망에 팔 수 있는 차는 아직 드물다.

표준은 최근에야 정리됐다

차량과 충전기가 양방향으로 대화하려면 공통 언어가 필요하다. 그 언어인 ISO 15118-20이 양방향 전력전송(BPT)을 처음 규정한 것이 2022년 4월이고, 교류(AC) 분산자원 서비스를 포함한 개정판이 나온 것이 2026년이다. 충전기와 백엔드를 잇는 OCPP가 양방향 전용 기능블록을 담은 2.1 버전을 낸 것도 2025년이다.

미국에서는 양방향 충전기 전용 안전규격인 UL 1741 SC가 2026년 5월에야 발행됐다. 그 전까지는 특정 차량과 특정 충전기 조합만 인증하는 ‘매치드 페어’ 방식에 의존해야 했다. 표준 정비가 끝난 것이 불과 최근 1~2년 사이라는 뜻이다.

커넥터 쪽 사정도 복잡하다. CHAdeMO는 양방향을 가장 먼저 상용화했지만 서구 시장에서 퇴조 중이고, 주류인 CCS 진영은 CharIN이 상호운용 가이드를 내놓았으나 그 문서에 “개발·시험 목적 전용, 양산에 그대로 쓰지 말 것”이라고 스스로 명시했다. 이 표준 공백이 실제로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영국 사례에서 확인된다. 2025년 6월 기준 영국의 양방향 충전기 형식승인 신청 14건 중 11건이 탈락했고, 통과한 3건은 모두 구형 CHAdeMO 규격이었다.

3. “전기차 10만 대 = 원전 1기”를 해부한다

국내에서 V2G를 설명할 때 거의 빠지지 않는 문장이 있다. “10kW급 양방향 충전이 가능한 전기차 10만 대가 동시에 방전하면 1GW 발전설비와 맞먹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파생된 계산이 2030년 420만 대 기준 42GW, 양수발전으로 같은 용량을 확보할 때 대비 78조 5,000억 원 절감이다.

먼저 산술을 확인하자. 10kW × 10만 대 = 100만kW = 1GW. 맞다. 42GW도 78조 5,400억 원(84조 − 5조 4,600억)도 곱셈과 뺄셈이 정확하다. 문제는 산술이 아니라 그 뒤에 생략된 가정이다.

전기차 10만 대 = 원전 1기 주장의 해부 — 동시 참여율별 출력과 에너지 기준 비교
산술은 맞다. 문제는 그 뒤에 생략된 가정이다 (클릭 시 확대)

가정 ① — “동시에”

이 계산은 10만 대가 모두 동시에 충전기에 꽂혀 있고, 모두 방전에 동의한다고 전제한다. 이것이 현실과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는 뒤(5장)에서 실측 데이터로 다룬다. 미리 말하자면, 영국에서 측정한 전기차의 충전기 접속 시간 비율은 평균 28%다.

동시 참여율을 60%, 40%, 25%로 낮추면 같은 10만 대의 출력은 0.60GW, 0.40GW, 0.25GW가 된다. 2026년 여름 최대전력 전망 98.8GW에 대비하면 각각 0.61%, 0.40%, 0.25%다.

가정 ② — 지속시간

원 주장은 지속시간을 명시하지 않는다. 파생 보도만 “1시간”을 붙인다. 그런데 발전소를 이야기할 때 출력(GW)과 에너지(GWh)는 전혀 다른 값이다.

가장 후한 가정으로 1GW를 3시간 유지한다고 하자. 3.0GWh다. 국내 신형 원전 APR1400 한 기는 1.4GW를 하루 24시간, 이용률 90%로 돌리면 30.24GWh를 낸다. 3.0 ÷ 30.24 = 9.9%. 에너지 기준으로 “전기차 10만 대”는 원전 1기가 하루에 내는 전기의 10분의 1 수준이다.

여기에 실제 시장이 그 용량을 어떻게 인정하는지를 얹으면 숫자는 더 줄어든다. 영국 용량시장은 지속시간이 짧은 자원에 감액계수를 적용한다. 배터리 기준 1시간 지속 자원은 13.64%, 2시간 지속은 27.15%다. 명판 1GW짜리 V2G 집합체가 용량시장에서 인정받는 값은 0.14~0.27GW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78조 원이 거짓말인 것은 아니다

같은 출력(kW)을 확보하는 비용만 비교하면 V2G가 양수발전보다 훨씬 싸다는 것은 사실이다. 양수발전은 건설에 7년 이상 걸리고, ESS는 6개월, V2G는 이미 굴러다니는 배터리를 쓰므로 훨씬 빠르다. 순간적인 출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V2G의 강점은 실재한다.

다만 그 강점은 “짧게, 자주, 빠르게”에 있지 “길게, 많이”에 있지 않다. 원전이나 양수발전과 나란히 놓는 비유가 오해를 만드는 지점이 정확히 여기다.

4. 한국 제도 — 법은 있는데, 정산할 창구가 없다

국내 보도에서 가장 자주 반복되는 서술이 “V2G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이 글은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관련 법령 원문을 직접 대조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서술은 부정확하다.

전기사업법 제2조 제12호의6은 소규모전력중개사업의 대상인 ‘소규모전력자원’을 세 가지로 열거하는데, 그 다목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유형의 전기자동차”다. 그리고 같은 법 시행령 제1조의3 제3항은 그 유형을 “환경친화적 자동차법에 따른 전기자동차”로 규정한다. 신재생 발전설비(2만kW 이하)나 전기저장장치(2만kW 이하)와 달리 전기차에는 용량 상한조차 없다. 2018년 개정으로 들어온 조항이다.

즉 전기차는 이미 법률상 소규모전력자원이고, 중개사업자가 이를 모아 전력시장에서 거래하는 것은 8년 전부터 허용돼 있었다. 그렇다면 왜 안 되는가.

한국 V2G 제도의 층위별 공백 — 법률에는 근거가 있으나 시행령·약관·시장규칙이 비어 있다
공백은 ‘법률’이 아니라 그 아래에 있다 (클릭 시 확대)

비어 있는 것은 하위규범 세 층이다

첫째, 통합발전소(VPP) 자원 목록에 전기차가 없다. 시행령 제1조의4는 통합발전소사업이 다룰 수 있는 에너지자원을 신재생 발전설비, 구역전기사업 발전설비, 중소형 원자력, 집단에너지, 전기저장장치, 수요반응자원으로 열거한다. 전기자동차는 목록에 없다. 같은 법률 안에서 소규모전력중개사업에는 전기차가 있고 통합발전소사업에는 없는 어긋남이 존재한다.

둘째, 한전 기본공급약관에 개인 전기차의 역송 정산 조항이 없다. 전기사업법 제16조는 전기판매사업자가 기본공급약관을 작성해 인가를 받고 그 약관에 따라 전기를 공급하도록 정한다. 약관에 없는 정산은 한전이 할 수 없다. 에너지경제연구원도 2026년 7월 기본연구보고서에서 “전력망에 전력을 역송할 명확한 근거가 불분명”하다고 진단했다.

셋째, 전력시장운영규칙상 전기차 자원의 등록·계량 절차가 정비되지 않았다. 소규모전력중개시장은 2019년 개설됐지만 계량기 설치·운영 비용과 복잡한 등록절차가 오랜 장애로 지목돼 왔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정리한 제도 공백은 네 가지다. ①전력 역송의 법적 근거 부재 ②보조서비스 시장 참여 경로 부재 ③계시별·실시간 요금제 미활성화 ④수요반응 제도와 예비력 시장 미정비(보도자료).

그래서 실증은 예외 경로로만 돈다

2023년 11월 6일 제3차 산업융합 규제특례심의위원회는 세 건의 V2X 실증특례를 승인했다. 현대차·기아가 전국 130개 장소에 전기차 110대, 티비유·기아가 최대 20대, 더함에너지가 전남·광주 20개 충전소 규모다. 특례의 내용은 “전기사업법상 전기차를 매개로 한 전력판매의 정의·기준이 없으므로 발전자원 지위를 부여한다”는 것이었다. 특례가 필요했다는 사실 자체가 공백을 입증한다.

또 하나의 경로가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 제43조다. 이 조항은 “분산에너지특화지역 내 분산에너지사업자는 전기사업법에도 불구하고 특화지역 안에서 전력시장을 거치지 않고 직접 전기사용자에게 전기를 공급할 수 있고, 요금과 공급조건을 개별 협의해 계약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특화지역은 2025년 11월 5일 1차로 경기 의왕·부산 강서·제주·전남 4곳, 12월 25일 2차로 울산·경북 포항·충남 서산 3곳이 지정돼 총 7곳이다(전기신문). 이 중 V2G가 사업모델로 명시된 곳은 제주 단 한 곳이다. 현대차그룹의 V2G 실증이 제주에서만 돌아가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 실증의 규모는 이렇다. 현대차그룹 공식 발표 기준 아이오닉 9·기아 EV9 보유 고객 55대 모집, 11kW급 양방향 충전기 무상 설치, 실증 기간 충전요금 전액 지원, 배터리 보증 유지. 2026년 7월 기준 일반 고객 가정 40곳에 인프라 구축이 완료됐다. 현대차·기아가 운영과 기술 검증, 현대엔지니어링이 서비스 분석, 제주도청이 조례 및 제도 개선, 한국전력이 배전망 연계를 맡는다.

정부도 움직이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V2G 협의체를 구성해 법·제도 개선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2026년 8월 현재 국내에서 상용화된 V2G 사업은 없다. 전부 실증이다.

5. 전기차는 생각만큼 꽂혀 있지 않다

V2G 이야기에는 거의 항상 “전기차는 하루의 95%를 주차장에서 보낸다”는 문장이 따라붙는다. 이 문장 자체는 사실이다. 문제는 주차돼 있는 것과 충전기에 꽂혀 있는 것이 다르다는 데 있다.

영국의 저탄소차량 연구기관 Cenex가 실제 전기차 데이터를 분석한 「True Value of V2G」 보고서는 전기차의 연간 평균 충전기 접속 비율을 28%로 측정했다. 최고 80%짜리 이용 패턴이 있는 반면 최저 6%도 있었다. 보고서가 관찰한 소비자 행태는 간명하다. “필요할 때만 꽂는다.”

V2G 실증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가구를 대상으로 한 영국 Sciurus 프로젝트에서도 접속률은 2019년 57%였다. 2020년에 70%로 올랐는데, 그해는 코로나 봉쇄 기간이었다. 정상 상태의 근거로 쓸 수 없는 숫자다.

국내에서는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렌터카 1,677대의 2021~2023년 시간단위 관측치 약 484만 개를 분석해 “최소 70%의 전기차가 주행이나 충전이 아닌 단순 정차 상태”라고 보고했다. 주차 상태는 확인됐지만, 그중 몇 퍼센트가 양방향 충전기에 물려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참여하겠다는 사람도 생각보다 적다

국내 연구팀이 선택실험 기법으로 측정한 결과, 실제로 V2G에 참여하겠다는 운전자는 4.5~15.3%였다(야간에는 상승). 같은 연구는 참여 차량의 연간 수익을 63만 6,749원, 연간 배터리 열화를 0.92%로 추정했다.

스웨덴 조사에서는 V2H 관심이 73%로 V2G(68%)보다 높았다. 소비자는 전력망보다 자기 집 백업을 원한다는 뜻이다. 같은 조사에서 압도적 다수가 “언제든 V2G를 무효화하고 즉시 충전할 수 있는 권한”을 요구했다. 애그리게이터 입장에서는 급전 신뢰도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된다.

네덜란드에서 실제 V2G를 경험한 운전자 17명을 인터뷰한 연구에서 가장 큰 우려는 배터리 열화가 아니라 주행거리 불안이었다. 지금 내 차에 얼마가 남아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는 피로다.

6. 그래서 얼마인가 — 한국의 가격 신호는 얇다

V2G 수익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쌀 때 사서 비쌀 때 파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가격 차이는 얼마나 될까.

전력거래소 육지 계통한계가격(SMP) 2026년 8월 27일 실적을 보면, 최저는 새벽 2~7시의 kWh당 102.09원, 최고는 오후 5시의 182.89원이다. 일중 스프레드 80.80원. 8월 21~27일 7일 평균은 79.14원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값을 계절 변동과 비교했을 때다. 2025년 월별 가중평균 SMP는 최고 125.50원(5월), 최저 90.43원(12월)으로 변동폭이 35.07원이다. 하루 안의 변동폭이 1년 안의 변동폭보다 2.3배 크다. “전기값이 계절마다 다르다”보다 “전기값이 하루 안에 크게 다르다”가 훨씬 정확한 서술이고, V2G의 존재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봄·가을에는 그 차이가 거의 사라진다

소매요금으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전 전기자동차 충전전력(고압) 요금표 기준 시간대별 차이는 다음과 같다.

계절 경부하 최대부하 차이
여름철 (6~8월) 79.2원 190.4원 111.2원
겨울철 (11~2월) 96.6원 165.5원 68.9원
봄·가을철 (3~5, 9~10월) 80.2원 94.9원 14.7원

단위: 원/kWh. 2025년 4월 1일 시행 요금표 기준. 부가세·기본요금 별도.

봄·가을 6개월간 스프레드가 14.7원에 불과하다. 여기서 충·방전 손실을 빼면 남는 것이 거의 없다. 그리고 결정적인 사실 하나 — 주택용 전기요금에는 시간대별 요금제 자체가 없다. 가정에 설치된 V2G 충전기가 “싼 시간에 사서 비싼 시간에 파는” 구조를 만들 요금 체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현대차 내부 시뮬레이션이 현행 제도 기준 차주 수익을 월 1만~2만 원으로 추정한 배경이 이것이다. 연 12만~24만 원. 이 숫자를 SMP 스프레드로 역산하면 하루 약 4~10kWh, 즉 10kW 충전기의 실효 가동시간이 하루 1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제주에는 다른 종류의 신호가 있다

2024년 6월 1일 제주 하루전시장에서는 낮 12~14시 SMP가 kWh당 −75.58원, 즉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전기를 가져가면 돈을 주는 상황이다. 여기서 충전해 저녁에 팔면 스프레드는 일반적인 80원의 세 배를 넘는다.

다만 제주 재생에너지 입찰제도는 3MW 이상 자원만 하루전시장에 입찰할 수 있다. 10kW 차량 기준 300대를 모아야 한다. 개별 차주는 반드시 애그리게이터를 거쳐야 하고, 거기서 수익 배분 문제가 시작된다.

7. 세계는 어디까지 갔나 — 그리고 어디서 멈췄나

V2G는 새 기술이 아니다. IEEE Spectrum이 정리한 역사를 보면 2001~2002년 AC Propulsion이 이미 실증을 했다. 당시 캘리포니아 전력위기로 부수서비스 가격이 치솟은 국면에 기댄 사업이었고, 위기가 지나자 매력도 사라졌다. 이 기사의 결론 문장이 인상적이다. “자동차 산업에는 V2G에 대한 분명한 이해관계가 없다.”

미국 — 제도는 열렸는데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미국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는 2020년 Order 2222로 분산자원 집합체의 도매시장 참여를 의무화했다. 최소 규모는 100kW, 10kW 차량 기준 10대면 등록이 가능하다.

그런데 2026년 초 집계에 따르면 CAISO에 등록된 분산자원 집합체는 7개(실제 거래 4개), NYISO는 5개(3개)이고 PJM·MISO·SPP·ISO-NE 네 시장에는 0개다. 시행 일정도 계속 밀려 PJM은 2028년 2월, MISO는 2029년 6월, SPP는 2030년 2분기다.

캘리포니아의 양방향 충전 의무화 법안 SB 233은 입법되지 않았다. 실제로 제정된 것은 2024년 9월 서명된 SB 59인데, 이것도 의무화가 아니라 에너지위원회에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재량 규정이다. 국내 기사에서 “캘리포니아가 양방향 충전을 의무화했다”고 인용되는 대목이니 확인이 필요하다.

파일럿 성적표는 더 냉정하다. 캘리포니아 공익사업위원회가 2022년 승인한 PG&E의 V2G 주거 파일럿은 목표 1,000가구에 2025년 9월 기준 실제 등록 3가구였다. 달성률 0.3%. CPUC 문서가 밝힌 지연 사유는 완성차·충전사업자 계약 지연, 양방향 충전기 고가, 기술표준을 충족하는 차량과 충전기의 부족이다.

가장 명확한 실패 기록은 남캘리포니아에디슨과 미 국방부가 로스앤젤레스 공군기지에서 2015~2017년 진행한 실증이다. 전기차 41대로 CAISO 주파수조정 시장에 참여했는데,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운영수익 7,639달러에 월 1,000달러의 스케줄링 수수료 등이 겹쳐 CAISO 순 청구액 1만 7,138달러의 적자로 끝났다. 초기 수령한 차량·충전기가 전부 테스트에 불합격했고, 2017년 1월에는 정확도 미달로 하향조정 서비스 인증이 취소됐다.

영국 — 실증은 성공했고 상용화는 좁아졌다

세계 최대 가정용 V2G 실증인 Sciurus 프로젝트는 320여 기를 설치해 3년간 운영했다. 결과 수치가 흥미롭다. V2G 크레딧 지급액은 월 80파운드(연 960파운드)였지만, 실제 순 전기요금 절감액은 연 360파운드였다(CHAdeMO 정리). 차액 600파운드는 V2G 참여를 위해 추가로 사들인 전기값이다. 크레딧을 수익으로 인용하면 2.7배 과대평가가 된다.

같은 보고서는 V2G 충전기가 스마트충전기보다 약 3,700파운드 비싸며, 1,000파운드 수준으로 내려와야 회수기간 5년 이내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영국의 대표적 상용 상품인 Octopus Power Pack은 현재 표준 변동요금 대비 연 620파운드, 기존 EV 전용 요금제 대비 161파운드 절감을 제시한다. 조건이 만만치 않다. 스마트미터와 수출 인증서, 하루 12시간씩 월 20일 이상 플러그인, 월 충전량 210kWh 미만, 최소 SOC를 30% 미만으로 설정, 그리고 대응 조합은 BYD 돌핀 + Zaptec Pro 단 한 가지다. Cenex가 측정한 실제 접속률 28%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조건이다.

유럽 — 제도가 먼저 정리되고 있다

EU는 재생에너지지침(RED III) 제20a조로 차량 제조사가 배터리 SOH·SOC·출력 설정점 등 데이터를 차주와 그 대리인에게 실시간·무상으로 제공하도록 의무화했고, 2025년 7월 집행위 가이던스가 세부 항목을 확정했다(EUR-Lex, 집행위 보도). 전력시장 개편 지침은 에너지 공유 제도를 도입하면서 고정요금 계약 고객이 수요반응 참여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보장할 의무를 회원국에 부과했다.

독일은 2025년 11월 에너지경제법을 개정해 전기차가 되보낸 전기에 계통이용료와 전기세를 면제했다. 그동안 독일에서 V2G가 막혀 있던 이유는 전기차가 ‘저장장치’가 아니라 ‘차량’으로 분류돼 충전할 때 한 번, 방전 후 재충전할 때 또 한 번 요금이 이중 부과됐기 때문이다. 면제는 2026년 1월 1일부터 시행됐다.

프랑스는 2024년 10월 세계 최초로 일반 소비자용 V2G 상품을 출시했다. 르노 5 E-Tech에 양방향 충전기와 전용 전기계약을 묶은 Mobilize Power다. 절감액은 1년차 평균 600유로로 안내되는데, 여기에는 중요한 단서가 붙어 있다. “1년차에 한해 르노그룹이 보조하며 이후 연도에는 변경될 수 있다.”

가장 정밀한 실측 수익 데이터는 덴마크에서 나왔다. DTU가 주도한 Parker Project는 닛산 e-NV200 10대로 1차 주파수조정 시장에 참여해 2017년 대당 1,710.72유로, 2018년 2,486.31유로를 벌었다. 1년 만에 45% 증가한 것은 기술이 좋아져서가 아니라 그해 기후가 건조해 계통 변동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보고서의 사업성 분석은 최선 시나리오 +2,304유로, 최악 시나리오 −955유로를 함께 제시한다. 결론 문장은 이렇다. “사업성의 보편적 답은 없다.”

중국 — 정책이 밀고, 첫 정산이 나왔다

중국은 2024년 8월 국가발전개혁위원회 통지로 차망호동(車網互動)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프로젝트 자격 기준이 구체적이다. 총 방전 출력 500kW 이상, 연간 방전량 10만kWh 이상. 2025년 4월에는 상하이·광저우·선전 등 9개 도시 30개 프로젝트가 1차로 선정됐다.

그리고 2026년 1월 13일, 신화사가 의미 있는 사건을 보도했다. 선전에서 한 개인 차주가 첨두시간대에 약 20kWh를 방전하고 15위안을 정산받았다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개인 차주가 V2G 방전으로 실제 전기요금을 정산받은 최초의 공식 확인 사례다. 다만 금액은 15위안이다. 상징성과 경제성 사이의 거리를 이보다 잘 보여주는 숫자도 드물다.

일본 — 목적지가 다르다

일본은 V2G보다 V2H에 집중했다. 차세대자동차진흥센터 통계 기준 V2H 충방전설비 보조금 교부 누계는 2019~2024년도 1만 4,971기다. 보조 단가 구조가 정책 의도를 드러낸다. 개인주택 상한이 기기 50만 엔 + 공사 15만 엔인 데 비해, 재해거점은 기기 75만 엔 + 공사 95만 엔으로 2.6배다. 목적이 전력시장이 아니라 재난 대응에 있다.

일본의 V2G 실증 결론도 참고할 만하다. 규슈전력과 전력중앙연구소 등 5개 사가 2018~2020년도에 진행한 실증은 “현시점에서는 시스템 비용이 높아 조정력 시장 수입만으로는 사업이 성립하기 어렵다”고 명시했다.

8. 그 값을 누가 가져가는가

이제 이 글의 원래 질문으로 돌아가자.

국가별 V2G 차주 수익 비교 — 통화 병기, 수익이 나오는 시장 구분
통화가 서로 다르므로 환산하지 않았다. 금액보다 ‘어느 시장에서 나온 돈인가’를 보라 (클릭 시 확대)

이 표에서 읽어야 할 것은 금액의 크기가 아니라 세 가지 패턴이다.

첫째, 수익이 큰 곳은 예외 없이 수요반응 또는 주파수조정이다. 에너지 아비트라지 단독으로는 유럽 상용 상품에서 연 600유로·620파운드 수준이 상한이다. 순수하게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만으로는 큰돈이 되지 않는다.

둘째, 최고 단가는 전부 스쿨버스다. 버몬트 대당 연 9,000달러, 매사추세츠 6,000달러는 모두 전기 스쿨버스 사례다(WRI). 이유는 단순하다. 배터리가 크고(150kWh 이상), 방학과 야간에 압도적으로 오래 서 있다. 승용차 V2G의 수익은 한 자릿수 낮다. 그리고 WRI 자신이 “실제 경험은 아직 제한적”이라고 밝히듯, 이 숫자들은 계약상 보상 단가이지 실현된 수익이 아니다.

셋째, 상용 상품의 실체는 ‘요금제 할인’이지 ‘시장 수익 분배’가 아니다. Octopus도 Mobilize도 차주에게 무료 충전이나 요금 할인을 제공하는 형태다. 시장에서 벌어들인 돈이 얼마인지, 그중 얼마를 사업자가 가져갔는지는 공개되지 않는다.

공개된 유일한 숫자는 40~50%다

미국 재생에너지연구소(NREL)가 2017년 정리한 V2G 경제성 보고서애그리게이터가 V2G 서비스 수익의 40~50%를 운영비와 이익으로 가져간다고 추정한다. 차량당 통신비만 연 30~360달러다.

같은 보고서가 정리한 문헌별 수익 추정치는 편차가 참혹하다. 주파수조정 기준 차량당 연 143달러(호주, “비용 감안 시 수익성 없음”이라 명시)부터 1만 7,384달러(미국 스쿨버스)까지 100배 이상 벌어진다. 차종, 서비스, 시장, 플러그인 시간이라는 분모가 전부 다르기 때문이다. “V2G 수익 얼마”라는 단일 숫자를 신뢰할 수 없는 이유다.

그리고 NREL이 인용한 소비자 조사는 더 곤란한 사실을 알려준다. 미국 소비자가 V2G 참여 대가로 요구한 최소 보상은 가장 유연한 계약에서도 연 2,368달러였다. NREL은 이것이 “개인 차량의 추정 수익 대부분을 초과한다”고 결론지었다.

충전사업자와 계통운영자의 몫은 어떤가. 어떤 공개자료에서도 수치화되어 있지 않다. 상장기업 Nuvve의 연차보고서도 배분 비율을 밝히지 않고,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카셰어링 사업 문서도 참여사 간 배분을 “공개하지 않음”이라고 명시한다. 이 침묵 자체가 하나의 정보다.

9. 반대편의 목소리 — 학계는 아직 합의하지 못했다

V2G 회의론의 가장 강한 근거는 “배터리가 망가진다”가 아니다. 세 가지 다른 이야기다.

V2G를 둘러싼 세 가지 학술 쟁점 — 배터리 열화, V1G 대비 효용, 왕복효율
세 가지 핵심 쟁점에서 연구 결과는 정면으로 갈린다 (클릭 시 확대)

쟁점 ① — 단방향 스마트충전만으로 충분한가

2026년 Nature Energy에 실린 유럽 전체 모델링은 냉정한 결론을 내놓았다. 단방향 스마트충전(V1G)만으로 연 190억~420억 유로, 시스템 비용의 2.2~4.5%를 절감할 수 있는 반면, V2G가 추가로 제공하는 절감은 연 최대 25억 유로에 그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를 “체감하는 한계 이득”이라 표현했다. V2G가 비용효과적인 조건은 “태양광이 지배적이고 계통 증설이 제약된 시나리오”로 한정됐다.

2022년 iScience 연구는 더 불편한 이야기를 한다. 전기차 보급률이 낮을 때는 V2G가 유리하지만, 보급률이 높아지면 순부하 피크의 대부분이 단방향 충전의 ‘충전 감축’만으로 충족된다는 것이다. V2G의 상대가치가 전기차 보급이 진행될수록 하락하는 구조라는 뜻인데, 이는 V2G 지지자들의 통상 가정과 정반대다.

반대편 연구도 있다. 독일 전기차 1,500만 대를 모델링한 2025년 논문(피어리뷰 전 프리프린트)“양방향 충전 비중이 30% 미만이어도 전 차량이 스마트충전하는 시스템보다 비용이 낮다”고 결론지었다. 두 연구는 모델 범위(범유럽 vs 독일), 계통 증설 가정, 시장 수익 계상 방식이 다르다. 한쪽으로 정리할 수 없다.

쟁점 ② — 배터리는 정말 망가지는가

이 논쟁의 원조 격 근거는 2017년 Journal of Power Sources 논문이다. 하루 2회 V2G를 수행하면 용량 손실이 75% 증가하고 저항이 10% 늘어나며, 온화한 조건에서조차 배터리팩 수명이 5년 미만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결과다.

덴마크에서 5년간 실차를 추적한 IEEE 논문은 하루 15시간 주파수조정에 참여한 차량의 용량이 23kWh에서 18.9kWh로 17.8% 감소했다고 보고했다.

그런데 정반대 결과도 있다. 같은 연구실(Dubarry)이 2020년 Energies에 발표한 논문은 주파수조정 조건에서 약 2,000사이클 뒤에도 유해 효과가 없었고, 오히려 V2G를 하지 않은 대조 셀 두 개가 35%·17%로 더 나빴다고 보고했다. 영국 워릭대 연구는 최적 스케줄링 시 용량 감소가 최대 9.1% 개선된다고까지 밝혔다.

이 모순이 화해되는 지점이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 열화의 85~90%는 캘린더 열화, 즉 그냥 시간이 지나면서 생기는 노화다. V2G 스케줄링은 평균 SOC를 낮춰 캘린더 열화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따라서 V2G가 늘리는 순환 열화보다 줄이는 캘린더 열화가 크면 순효과는 마이너스가 된다. 2024년 arXiv에 공개된 프리프린트는 같은 V2G 서비스라도 지배적 열화 메커니즘에 따라 ‘처리량당 손실 일수’가 최대 24배 차이가 난다는 것을 보였다. 셀 화학과 보관 온도가 답을 가른다는 뜻이다.

2024년 Energies에 실린 종합 리뷰의 자기 진단이 이 상황을 가장 정확히 요약한다. “현재 문헌의 주요 결함은 스마트충전 개념의 열화 효과에 대한 합의에 도달할 실험 연구가 부재하다는 점이다.”

보증은 실질 장벽이다

이 불확실성은 곧바로 보증 문제로 이어진다. 호주 시장에서 현대·기아·BYD·테슬라·지커가 모두 미승인 양방향 장비 사용에 대해 보증 관련 경고를 내놓았다.

현대차가 밝힌 기술적 우려는 구체적이다. 일부 충전기가 제조사 소프트웨어를 우회해 양방향 동작을 구현하는데, 계기판에는 0kW로 표시되면서 실제로는 30kW로 방전되는 사례가 관찰됐다는 것이다. 안전 버퍼를 넘어 방전되면 팩이 복구 불가능해질 위험도 지적됐다.

구조적 문제는 따로 있다. 배터리 보증은 ‘기간과 주행거리’로 쓰여 있는데 V2G는 ‘에너지 처리량’을 늘린다. 두 지표가 어긋나 있으니 분쟁의 여지가 남는다. 현대차그룹이 제주 실증에서 배터리 보증을 유지하기로 한 것은, 이 불확실성의 비용을 제조사가 흡수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쟁점 ③ — 전기는 얼마나 사라지는가

충전과 방전을 한 번씩 거치면 전기의 일부가 열로 사라진다. 이 왕복효율(RTE)이 V2G 손익을 가른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 연구진의 실측은 최적 조건에서 87.0%, 전 조건 범위 79.1~87.8%를 보고했다. 그런데 전류가 낮아지면 효율이 급락한다. 3상 16암페어에서 87.0%이던 것이 4암페어에서는 79.2%가 됐다.

더 나쁜 숫자도 있다. 2025년 미국 CalNEXT 시장조사 보고서가 인용한 2017년 실험실 연구는 시스템 왕복효율을 53~62%로 측정했다. “통상 가정하는 80~85%보다 현저히 낮다”는 것이다. 같은 보고서는 충전기 1세트의 대기전력 손실만 연 219kWh에 달한다는 점도 지적한다.

이 숫자가 왜 중요한지는 한국 데이터로 계산하면 분명해진다. SMP 기준 손익분기 왕복효율은 경부하 단가 ÷ 피크 단가 = 102.09 ÷ 182.89 = 55.8%다. 이 아래로 떨어지면 차익거래는 적자다. 실측된 왕복효율의 하한(53~62%)이 정확히 이 선과 겹친다. 최악 조건의 충전기로는 한국에서 SMP 아비트라지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쟁점 ④ — 계통용 배터리가 너무 싸졌다

V2G가 답해야 할 마지막 질문이 있다. 배터리를 계통 옆에 직접 세우면 되지 않나.

블룸버그NEF의 2025년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턴키 계통용 배터리 가격은 kWh당 117달러로 전년 대비 31% 하락했다. 중국은 73달러, 유럽 177달러, 미국 219달러다. IEA가 제시한 양방향 DC 충전기 가격 5,000달러로 계통용 배터리를 사면 글로벌 평균 기준 약 43kWh를 살 수 있다. 게다가 계통용 배터리는 100% 시간 가용이고, V2G는 평균 28%만 꽂혀 있다.

여기서도 학계는 갈린다. 2025년 World Electric Vehicle Journal 논문은 리튬인산철 배터리 기반 V2G의 균등화저장비용(LCOS)이 0.057~0.326달러/kWh로 상용 계통용 배터리(0.123~0.350달러)보다 유리한 구간이 있다고 분석했다. 저자들의 결론은 “상당한 중첩과 격렬한 경쟁”이다.

업계의 현실 — 대표주자들이 흔들린다

V2G 순수 상장기업의 대표격인 Nuvve는 2026년 1분기 보고서에서 매출 139만 달러에 순손실 560만 달러, 보유 현금 205만 달러를 기록하며 계속기업 존속에 중대한 의문이 존재한다고 공시했다. 2025년 12월과 2026년 6월, 7개월 사이 나스닥 최저 주가 규정을 맞추기 위해 액면병합을 두 차례 단행했다.

또 다른 선도기업 Fermata Energy는 2025년 5월 Nuvve에 총 65만 9,000달러 규모로 매각됐다. 세계 최초로 UL 9741 인증을 받았던 회사의 최종 가격이다.

10. 그래서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금까지의 자료를 종합하면, V2G에 대한 정직한 평가는 이렇다. 기술은 준비됐고, 물리는 작동하고, 경제성은 조건부이며, 제도는 나라마다 다르다. 한국의 조건에서 실제로 필요한 것은 네 가지로 좁혀진다.

첫째, 정산할 창구를 만든다

법률 개정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시행령 제1조의4의 통합발전소 자원 목록에 전기자동차를 추가하고, 한전 기본공급약관에 개인 전기차 역송 정산 조항을 넣고, 전력시장운영규칙에 전기차 자원의 등록·계량 절차를 정비하면 된다. 세 개의 하위규범이다. 지금 제주에서만 V2G가 가능한 이유는 특화지역 밖에서는 되판 전기를 정산할 창구가 없기 때문이지, 법이 금지해서가 아니다.

둘째, 주택용 시간대별 요금제를 연다

가정용 V2G의 경제성이 성립하려면 가정에 시간대별 가격 신호가 있어야 한다. 지금은 없다. 2026년 4월 산업용 요금의 시간대 구분이 개편된 것은 방향은 맞지만 대상이 다르다. 국내 연구가 측정한 전기차 충전수요의 가격탄력성이 전국 -0.147~-0.260이라는 것은, 가격 신호를 주면 사람들이 실제로 반응한다는 뜻이다.

셋째, 승용차보다 버스와 렌터카를 먼저 본다

세계 사례에서 수익이 실현된 곳은 예외 없이 대형 배터리와 긴 유휴시간을 가진 차량이었다. 미국은 스쿨버스, 덴마크는 유틸리티 밴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도 V2B 우선 상용화와 렌터카·차량공유 선행 적용을 제안했다. 국내에는 전기버스와 대규모 렌터카 플릿이 이미 있다. 승용차 보급을 기다릴 이유가 없다.

넷째, 배분 구조를 처음부터 공개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할지 모른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V2G 수익이 차주·애그리게이터·충전사업자·계통운영자 사이에 어떻게 나뉘는지 공개되어 있지 않다. 지금 한국은 실증 단계다. 배분 규칙을 상용화 이후가 아니라 실증 설계 단계에서 공개하는 것이, 나중에 신뢰를 잃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

현대차그룹 제주 실증이 참가자에게 충전기 무상 설치와 충전요금 전액 지원, 배터리 보증 유지를 제공하는 것은 현물 보상이다. 실증 단계에서는 합리적인 설계다. 그러나 상용화 국면에서 차주가 받는 것이 “요금 할인”인지 “시장 수익의 몫”인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유럽 상용 상품들이 전부 전자를 택했고, 그래서 시장 수익의 행방은 여전히 알 수 없다.

11. 결론 — 발전소가 되는 것과 발전소로 대접받는 것은 다르다

주차된 전기차의 배터리가 전력망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낮에 남는 태양광을 저녁까지 옮기고, 저녁 피크의 가파른 상승을 몇 시간 눌러주는 일을 배터리는 잘한다. 그리고 그 배터리는 이미 도로 위에 109만 대 굴러다니고 있다.

문제는 그 기여가 얼마로 값이 매겨지고, 그 값이 누구에게 가느냐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 세계 어느 나라도 아직 만족스러운 답을 내놓지 못했다. 미국은 제도를 열었는데 참여자가 없고, 영국은 실증에 성공했는데 상용 조합이 하나뿐이며, 덴마크는 실측 수익을 냈지만 최악 시나리오는 적자다. 중국에서 나온 아시아 최초의 개인 정산액은 15위안이었다.

한국의 상황은 그중에서도 특이하다. 법률에는 전기차가 전력자원으로 적혀 있는데, 그 전기를 사줄 창구가 없다. 제주 특화지역이라는 예외 안에서만 실증이 돌아가고, 그 안에서도 차주가 받을 것으로 추정되는 돈은 월 1만~2만 원이다.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가격 신호가 얇고 정산 규칙이 비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기차가 발전소가 되는 날”이라는 표현은 절반만 맞다. 전기차는 이미 발전소가 될 수 있다. 아직 발전소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대접은 기술이 아니라 제도가 결정한다. 시행령 한 줄, 약관 한 조항, 요금표의 시간대 구분이 결정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 글에서 확인한 가장 강한 반론은 “배터리가 망가진다”가 아니었다. 단방향 스마트충전만으로도 편익의 상당 부분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전기차를 언제 충전할지만 제어해도 시스템 비용의 2.2~4.5%를 아낄 수 있다면, 양방향을 서두르기 전에 단방향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는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한국의 경우 그 단방향조차 주택용 시간대별 요금제가 없어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순서는 더 분명해진다.

전기차를 발전소로 만드는 일은 배터리를 크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그 배터리가 만든 가치를 셈하고 나누는 규칙을 쓰는 일이다.


이 글은 긱토이브이 인사이트가 연재하는 EV 산업 분석 시리즈의 16편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자율주행과 충전 로봇 — 사람이 꽂지 않는 충전은 언제 오나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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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주제 미리보기 — 자율주행과 충전 로봇 / EV 부품 공급망의 재편 / EV 중고차 잔존가치와 데이터 / 전력망 투자와 요금 부담의 분배

편집 노트: 이 글은 국내외 자료 290여 건을 교차 검증해 작성했습니다. 학술 논문 25편 이상과 국가법령정보센터의 법령 원문 12건을 직접 대조했으며, 인용한 모든 수치의 근거는 본문 하이퍼링크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피어리뷰를 거치지 않은 사전공개 논문은 본문에 그 사실을 표시했습니다. 통화가 다른 금액은 환율 가정이 개입되지 않도록 원 통화와 기준연도를 그대로 표기했으며, 원화로 환산하지 않았습니다. 학계에서 결론이 갈리는 사안은 한쪽으로 정리하지 않고 갈린다는 사실 자체를 기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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